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
'이름'은 대상을 칭하여 이른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사람의 이름인 '성명'은
성씨'성'과 이름'명'이 합쳐져 있다.
성씨는 과거에서부터 오고,
이름은 미래를 향해 있다.
중세 영화에서 이름 앞에 '아무개의 아들'을
형용사로 붙여 본인을 소개하는 것과
이름 자체를 '아무개 주니어'로 짓는 것은
본인을 존재하게끔 한 시작이나
과거를 간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는 이름에도 족보의 항렬자나
돌림자가 정해져 있어 조금 제약이 있지만
보통은 한 사람의 생에 대한 기대 내지,
소망과 염원을 이름에 담는다.
(이름을 불러줄수록 그 미래에 다가가게끔
도와준다는 미신도 있어, 나도 어렸을 때
집에선 다른 이름으로 불렸던 기억이 있다)
회사나, 음식점, 아이돌 그룹의 이름들도
미래지향적임엔 사람의 이름과 같지만,
보다 읽히기 쉽고 기억되기 쉽게끔
상업적인 방향성이 약간 가미된다.
어떠한 대상을 지칭하는 이름이든 간에
대상과의 어울림과 담긴 의미를 통해
시간이 지나도 오래 기억되어야 하는 게
최우선시되는 속성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꽃의 '이름'은 조금 어렵다.
탄생하며 얻는 사람의 이름과 달리
누군가가 발견하며 본인의 이름을 붙이거나,
예부터 모양이나 색상, 용도로 인해 자연스레
불러오던 이름이 구전되어 불린다.
꽃의 과거도 미래도 담겨있지 않다.
지금까지 찾아본 꽃 이름들은 보통
한글, 영어, 학명. 세 가지 형태다.
한글명은 구전된 이야기를 찾다 보면
익히기가 가장 편하고 뭔가 귀엽다.
영어명은 속한 분류 속이나 발견한 사람
이름 등이라 이해가 뒷받침될 순 있다.
억지로 한글화 시킨 이름이 있을 때도 있는데
그것보다는 영어명이 차라리 낫다.
학명 쪽으로 넘어가면 아주 고약하다.
전 세계 어디서나 동일하게 쓰이는 학명은
단 두 단어로 모든 생물종을 잘 정리해 놓았지만
주로 죽은 언어인 라틴어나 그리스어로 되어있다.
어원을 들어도 와닿지 않고, 입에도 안 붙는다.
다시 김춘수님의 '꽃'을 살펴보자.
나와 달리, 교과과정을 충실히 이행하셨다면,
이 시에서 '꽃'이 실제 '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존재'를 나타내는
것쯤은 알고 계실 거다.
여기서 중요한 건 꽃보다 '이름'이다.
시에서 '나'는 누군가가 자신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소망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됨을 깨닫고,
자신도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시에서 이름은 '존재를 인식하는 수단'이다.
와닿지 않는 꽃의 이름, 학명들을 모두 모아
공감되고 의미 있는 이름들로 싹 다 바꾸어
이 블로그만의 꽃 이름 규칙을 새로 정하겠다!
..같은 파격적인 선언은 현실적으로 힘들지만,
적어도 꽃의 '이름'을 대하는 내 생각이
'꽃'이란 시에서 화자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어디까지나 공교육의 해석에 따른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 김춘수 님의 '꽃'을 다시 읽었을 때,
‘이름’에 대해 색다른 해석이 떠오르지 않을까.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글을 마쳐본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잊혀지지 않은 하나의 꽃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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